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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담상조( 肝膽相照 ).

간과 쓸개를 서로 내놓고 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를 뜻한다. 간과 쓸개를 내어 놓고 볼 만한 친구, 곧 마음이 잘 맞는 친구. 상호간에 진심을 터 놓고 격의 없이 사귐. 서로 마음을 터 놓고 숨김 없이 친하게 사귐을 이름.


<유래>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중국의 당나라, 송나라 시대에 문장으로 유명했던 중국의 여덟 사람을 일컫는 말) 중 당대의 두 대가에 韓愈(한유)와 柳宗元(유종원)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古文復興(고문부흥)운동을 제창한 친구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한유와 유종원의 성만 따서 부른 것)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었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때 유종원이 유주자사로 좌천되었는데, 그의 친구 劉夢得(유몽득)도 파주자사로 가게 되었다.

 한유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이었던 파주자사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그의 묘지명에 이렇게 쓰고 있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節義(절의)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2. 관포지교( 管鮑之交 ).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多情)하고 허물없는 교제(交際)」를 비유한 말이며, 「管鮑交(관포교)」라고도 한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 사이와 같은 사귐이란 뜻. 시세(時勢)를 떠나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말.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관포(管鮑)는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를 말한다.

 

<유래>

관중(管仲)은 젊은시절 포숙아와 사귀었는데, 훗날 관중은 포숙아에 대한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술회 하였다. "일찍이 곤궁해 있을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했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중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포숙을 위해 사업을 경영하였다가 실패해 다시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포숙은 나를 우매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이롭고 이롭지 않은 것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임금에게 쫓겨나고 말았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세 번 싸웠다가 세 번 다 패해서 달아나고 말았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공자(公子) 규(糾)가 패했을 때, 동료이던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잡혀 욕된 몸이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부끄럼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보다는 공명을 천하에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관중은 소홀과 함께 양공(襄公)의 공자(公子)인 규(糾)의 측근이 되었고 포숙아는 규의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이 되었다. 종제인 공손무지(公孫無知)의 반란으로 양공이 죽음을 당하자 관중은 규(糾)를 받들고 노(魯)나라로 망명했고, 포속아는 소백(小白)을 받들고 거로 망명했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켰던 공손무지가 반대파에게 죽임을 당하여 제(齊)나라에는 왕위(王位)가 비어있었다. 규와 소백 가운데 먼저 제나라에 돌아온 자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므로 둘 사이는 적대적의 관계가 되었다. 규는 소백보다 먼저 제나라에 돌아가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아니하였고, 반대로 소백은 제나라로 향하였다. 이러한 정보를 얻은 관중은 규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는 소백을 죽이는 길 밖에 없음을 알고 소백이 제나라로 돌아가는 도중에 매복하여 죽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소백은 제나라에 돌아와 왕위에 올랐으니 이가 곧 제환공(齊桓公)이다. 왕위에 오른 제환공은 규를 죽이고 관중 또한 죽이려 했으나, "왕께서는 천하를 다스리고자(패자) 하신다면 관중을 살려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고 포숙아가 말리었다. 환공은 포숙아의 말에 따라 관중을 살려 주었을 뿐만아니라 대부(大夫)에 임명하여 국정을 다스리게 했다. 과연 관중은 대재상으로써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환공을 춘추시대 제일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3. 교칠지심( 膠漆之心 ). 

아교(膠)와 옻칠(漆)처럼 끈끈한 사귐이란 뜻.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교분(交分)을 이르는 말. 교칠지교( 膠漆之交 ).


<유래>

백낙천(白樂天)은 좌천되어 있을 때 두터운 우정을 담은 내용의 서신을 친구인 원미지(元微之)에게 보냈는데, "4월 10일 밤에 낙천은 아뢴다. 미지여, 미지여, 그대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도 이미 3년이 지났네. 그대의 편지를 받지 못한 지도 2년이 되려고 하네. 인생이란 길지 않은 걸세. 그런데도 이렇게 떨어져 있어야 하니 말일세. 하물며 아교와 옻칠 같은 마음으로써 북쪽 오랑캐 땅에 몸을 두고 있으니 말일세. 나아가도 서로 만나지 못하고 물러서도 서로 잊을 수 없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떨어져 있어, 각자 흰머리가 되려고 하네. 미지여, 미지여,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하늘이 진실로 이렇게 하신 것이라면, 이것을 어찌한단 말인가"백낙천은 원미지와 함께 천자(天子)가 임시로 인재를 발탁하는 시험에 급제하여, 백낙천은 장안(長安)의 서쪽 주칠현의 위(尉 - 검찰관)로, 원미지는 문하성의 간관(諫官)인 좌습유(左拾遺)로 발령을 받아 부임하여 생활하였다. 두 사람은 이러한 동지로서 친밀하게 지냈을 뿐만 아니라 시(詩)의 혁신에도 뜻을 같이하여 악부(樂府-한(漢)나라 시대의 민요를 토대로 시대의 폐단인 백성들의 분노와 고통과 번뇌를 담음)에 유교적인 민본사상을 맥박치게 하는 신악부(新樂府)라는 새로운 시체(詩體)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백낙천과 원미지는 변방으로 좌천되었다. 좌천되어 있을 당시 백낙천이 두터운 친분이 담긴 내용의 서신을 원미지 앞으로 보낸 것이 바로 위의 내용이다. 교칠(膠漆)이란 아교와 옷을 말하는데, 아교풀로 붙이면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고 옻칠을 하면 벗겨지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곧 백낙천은 원미지와 매우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다는 뜻으로 교칠이란 단어를 쓴 것이다.


4. 막역지우( 莫逆之友 ).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아주 허물없는 사이. <莊子>에 똑같은 형식으로 이야기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유래>

 자사(子祀)와 자여(子輿)와 자리(子犁)와 자래(子來)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 함께 말하기를,

 "누가 능히 무(無)로써 머리를 삼으며, 삶으로써 등을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을까? 누가 사생존망(死生存亡)이 한 몸인 것을 알랴! 우리는 더불어 벗이 되자." 네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벗이 되었다. 자상호(子桑戶)와 맹자반(孟子反)과 자금장(子琴張)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더불어 말하기를, "누가 능히 서로 더불어 함이 없는데 서로 더불어 하며, 서로 도움이 없는데 서로 도우랴. 능히 하늘에 올라가 안개와 놀며, 끝이 없음에 날아 올라가며, 서로 잊음을 삶으로써 하고, 마침내 다하는 바가 없으랴" 하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웃으며, 서로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더불어 벗이 되었다.


5. 문경지교( 刎頸之交 ). 

목을 벨 정도의 위험에도 생사를 같이 할 절친한 교재를 일컫는 말. 문경지계( 刎頸之契 ).

생사를 같이하는 친한 사귐. 또 그런 벗.

<유래>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 유현(劉賢)의 식객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원상(原狀)대로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그리하여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유명한 염파(廉頗)보다 더 높아졌다. 그러자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싸움터를 누비며 성(城)을 쳐서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돌아가곤 했다. 이같은 인상여의 비겁한 행동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그러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과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론 소양왕이지요."  "나는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소양왕을 혼내 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어찌 염파 장군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쳐들어 오지 않는 것은 염파 장군과 내가 버티어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고 염파 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웃통을 벗은 다음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짊어지고[肉袒負荊]' 인상여를 찾아가 섬돌 아래 무릎을 꿇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 어서 나에게 벌을 주시오." 하고,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刎頸之交'를 맺었다고 한다.


6. 백아절현( 伯牙絶鉉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 주는 절친한 벗, 즉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

'백아(伯牙)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고사에서 '참다운 벗의 죽음'을 이르는 말.


<유래>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 높은 백아(伯牙)에게는 그 소리를 누구보다 잘 감상해 주는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며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그려 내려고 시도하면,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종자기의 잎에서는 탄성이 연발한다. "아, 멋지다. 하늘 높이 우뚝 솓는 그 느낌은 마치 태산(泰山)같군" "응, 훌륭해, 넘칠 듯이 흘러 가는 그 느낌은 마치 황하(黃河)같군" 두 사람은 그토록 마음이 통하는 연주자였고 청취자였으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절망한 나머지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기(知己)를 가리커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7. 수어지교( 水魚之交 ).

물고기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같이 부부나 군신관계의 서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친밀한 사이를 뜻한다. 변하지 않는 깊은 교우 관계도 이 성어를 쓴다.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래>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와 같은 용장이 있었지만, 천하의 계교를 세울 만한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가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과 같은 사람을 얻었으므로, 유비의 기쁨은 몹시 컸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금후에 취해야 할 방침으로,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눌러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할 것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어루만져 뒤의 근심을 끊을 것과 내정을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리를 올릴 것과 손권과 결탁하여 조조를 고립시킨 후 시기를 보아 조조를 토벌할 것 등의 천하 평정의 계책을 말하자 유비는 그 계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그 실현에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비는 제갈공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나 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8. 죽마고우( 竹馬故友 ).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내며 자란 친구를 이르는 말.

① 어렸을 때의 벗.

② 어렸을 때 친하게 사귄 사이.

③ 어렸을 때부터 오랜 친구. 죽마지우( 竹馬之友 ). 죽마구우( 竹馬舊友 ).


<유래>

 진(晉 : 東晉)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 : 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殷浩)라는 은사(隱士)를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楊州刺史)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政敵)이 되어 반목(反目)했다. 왕희지(王羲之)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고 호족(胡族)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竹馬故友]'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9. 지기지우(知己之友)

자기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


<유래>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말인데,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을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하였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다시는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 이다.


10. 지란지교(芝蘭之交)

향기로운 풀인 지초와 난초 같은 친구의 사귐.


<유래>

공자(孔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붉은 주사를 가지고 있으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가지고 있으면 검어지게 되니, 군자는 반드시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라고 말하였다.이 말에서 유래된 한자성어가 ‘지란지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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